고등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집에 굴러다니던 책 중에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가 있었다.
내 기억엔 작가 이름이 '하아퍼 리'이다.
제목에 끌려 읽었다.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두어번 더 본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면 매번 떠오르는 제목이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내용인데 깊이가 있다.
따뜻하다.
사람의 심리가 대놓고 나오진 않지만 은근히 베어있다.
읽고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에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는 베스트셀러도 아니었고, 유명한 책도 아니었으면, 주변에 읽은 사람도 없었고, 책 제목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그게 뭔 책이랴?'라는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뒤, 꽤 유명한 책이라며 소개받은 책이 "앵무새 죽이기"이다.
재밌다고 해서 읽어나가다가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와 같은 내용이지 않은가.
작가도 같다.
출판사와 제목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며칠 전, 차인표의 소설인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읽는데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가 떠올랐다.
두 책의 느낌이 비슷해서일까.
술술 잘 읽히는데 깊다.
문장이 어려워서 깊은 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담고 있어 깊은 게 아니라, 따뜻한 온기를 품게 해주어 깊다.
참 슬픈 내용인데 따뜻하다.
담담하게 써 내려져있는데 따뜻하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따뜻하다.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마음은 따뜻하더라.
신기하게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도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것 같다.
10여년 전 "잘가요 언덕"으로 출간되었다가 독자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해 인쇄가 끊겼나보다.
그런데 우연찮게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께서 "잘가요 언덕"을 읽고 마음에 들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차인표의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이 책이 옥스퍼드 대학교의 어떤 학과 필독서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서다.
책을 읽으며 눈물 흘리고 코를 푸는 나를 보며 아들이 물었다.
"엄마, 대학교 필독서로 채택될만한가봐?"
나의 대답은
"응, 강력 추천해~"
본문 중에 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써 본다.
"호랑이들은 우리가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 산에서 살고 있었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생각해 보게나.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혹은 조금 불편하다고, 혹은 조금 이득이 생긴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지라도 말일세.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네. 짐승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과도 더불어 살 수 없는 법이야."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용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용서'라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백호를 잡아 복수하겠다던 용이가 변한 걸까요? 아니면 홀로 지낸 세월에 지친 걸까요?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띄엄띄엄 말을 잇는 용이의 얼굴이 깊은 외로움을 머금고 있습니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잠잠히 순이의 말을 듣고 있던 용이의 눈동자에 밤하늘의 별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용이가 그 눈동자로 말없이 순이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중 1 아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코멘트를 할지 기대된다.
그나저나 인터넷서점의 광고(?)가 조금 오버다.
옥스퍼드대학교의 필수 도서인 듯한 광고. (대학교의 어느 학부? 어느 학과?의 필독서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2009년 베스트셀러 <잘가요 언덕> 개정판이라는 광고. (그 때 당시... 안 팔려서 절판된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광고는 과장이 기본이긴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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