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1984>
민음사에서 따끈따끈하게 새로 찍어낸 <1984>가 내 손에 들어왔다.
표지부터 섬뜩하다.
색깔이 다른 인간 넷
각각 들고 있는 서류 가방
노려보고 있는 눈
조지 오웰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많은 차별로 왕따를 당했던 것 같다.
그의 자서전(?)에는 어릴 적 학교에서 받았던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차별, 전쟁, 불평등을 겪으며 자란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여러 글을 섰다.
<1984>는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그가 <1984>를 쓴 해는 1940년대 말이니, 그 때 당시에는 상당히 미래공상소설에 가까웠을 것이다.
1984년, 세계는 커다란 세 개의 국가에 의해 지배된다.
그 중,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가 속한 국가는 오세아니아다.
오세아니아에는 내부당원(2% 정도), 외부당원(13% 정도), 프롤(85% 정도)이라는 세 계급이 있다.
오세아니아는 국가의 통치를 위해 절대 권력의 상징인 허구의 인물 '빅 브라더'를 만들어 무지한 프롤이 찬양하도록 한다.
"무지는 힘"
프롤은 무지해야 한다.
그래야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니 말이다.
또한 일거수일투족을 감사하는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등을 곳곳에 설치하여 '외부당원'의 사생활을 철저히 통제한다.
외부당원은 내부당원의 영원한 권력유지를 위해 이용되는 계급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공부와 지적사유가 허용되므로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집단인 것이다.
"자유는 예속"
외부당원은 예속을 당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전쟁은 평화"
오세아니아는 반역자 골드스타인을 내세워 그를 증오하게 함으로써 프롤과 외부당원의 증오심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끊임없는 전쟁이 권력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 스미스는 외부당원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기록된 문서를 내부당원의 입맛에 맞게 날조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일은 내부당원의 무한한 권력유지를 위해 중요한 일인데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슬로건처럼, 사람들은 내부당원이 만든 역사와 기록을 통해 현재를 인식하게 되고, 개개인은 주체의식을 잃고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1984는 이러한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파멸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스미스는 국가의 통제에 의구심을 가졌고 그로인해 사상경찰에게 잡혀 내부당원으로부터 고문을 받는다.
계속된 고문으로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마저 배신하게 되는 스미스.
일상생활로 돌아온 스미스의 마지막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권력의 상징인 '빅 브라더'를 사랑하다니.
가스라이팅의 끝은 사랑이던가.
나는 이 책을 통해 계엄을 일으킨 세력과 계엄을 옹호하는 국힘당을 눈꼽만큼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세상에... 대체나... 그렇구나...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288쪽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당 자체를 영속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계층적 구조를 언제나 동일하 게 유지하는 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부분을 읽으며 섬뜩했다.
국힘당은 계엄을 일으킨 사람들을 옹호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럴만했으니 계엄을 일으켰겠지, 라는 말을 하며 당을 유지시키려한다.
국힘당은 자신들이 지배계급이라는 오만함에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윤석렬을 버리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앞세워 당을 유지시키는 게 목적이다.
364쪽
우리는 그들과 다르네.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법이지.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박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박해일 뿐이네.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말일세.
그처럼 권력의 목적도 권력 그 자체네.
이제 내 말 을 이해하겠나?
세포의 쇠멸은 유기체의 활력을 의미하네.
손톱을 깎았다고 해서 자네가 죽는 건 아니잖은가?
소름이 돋는다.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
독재를 하기 위해 계엄을 발령한 것.
국민은 손톱.
손톱은 길어나면 잘라야하는 것.
그래야 유기체가 활력을 유지한단다.
97쪽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프롤들에게만 있다.
왜냐하면 오세아니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우글거리는 피압박 대중만이 당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내일 아침에라도 당을 산산조각 내 버릴 수 있다.
조만간 그들도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프롤은 국민의 85%를 차지하는 우리를 일컫는다.
계엄이 선포된 날, 한달음에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 말이다.
시민에게 에워싸여 이상한 상황임을 알고 미적미적 대응했던 군인 말이다.
국회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던 보좌관들 말이다.
국힘당에게 탄핵투표를 하라고 추운 겨울 길바닥에서 외치던 시민 말이다.
늦더라도, 무섭더라도, 조금씩 진실을 말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말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라고 말했다.
예술로 승화된 오웰의 1984가 요즘엔 매우 정치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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